주일설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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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다는 것이 무엇인가?(창 1:24-27)

2002년 9월 8일 김준우 목사

오늘이 백로입니다. 하얀 이슬이 맺히는 백로는 무더위가 지나고 가을이 시작되는 절기입니다. 예수님께서 저 들의 백합화와 공중의 새에게서 배우라고 말씀하신 것처럼, 우리도 이제는 아무런 욕심 없이 밝게 피어있는 코스모스에게서 삶의 지혜를 배워야 하는 절기입니다. 꾸밈없이 소박하게 웃음짓는 과꽃에서 하나님의 넉넉하신 은혜를 배워야 하는 절기입니다. 요한복음 10:10의 예수님의 말씀처럼,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더욱 풍성한 생명을 누리며 살기를 원하시는 줄 믿으시기 바랍니다.

1.

그러나 살다 보면 풍성한 생명이 아니라, 뜻밖에 황당한 일을 겪기도 하여, 화를 내기도 하고, 가슴이 답답해지고 허탈해져서 맥이 풀려버리는 때도 있습니다. 그러면 "도대체 산다는 게 무엇인가?" 하고 새삼 자신에게 묻기도 하고, 탄식도 하게 됩니다.
태풍으로 인해 큰 수해를 당한 사람들 모습을 텔레비전을 통해 보면서 참 안타까움을 느끼게 됩니다. 집도 떠내려가고 1년 농사를 다 망쳐버린 어떤 할머니는 "아무리 하나님이 하는 짓이지만 이건 너무 합니다"라고 하나님을 원망하시더군요. 옛날 사람들은 홍수나 태풍이나 가뭄이 하나님이 내려보내시는 징벌이라고 생각했지만, 오늘날에는 그런 일들이 기후현상 때문이라고 믿지, 하나님이 하시는 일이라고 믿지는 않습니다. 더군다나 지구온난화 때문에 태풍과 홍수, 가뭄이 심해진다는 과학자들의 말을 들어보면, 그런 기후현상이 인간의 책임이지, 결코 하나님 책임은 아니라는 말입니다. 우리가 더욱 풍성한 생명을 누리기를 원하시는 하나님께서 아무려면 우리에게 그런 자연재해를 내려보내시겠습니까? 추석은 다가오고 날씨는 추워지는데 그처럼 많은 피해를 입은 가난한 사람들이 얼마나 낙심이 될까를 생각하니 참 안타깝고 답답합니다.

2.

자연재해 때문에 가족을 잃고, 집을 잃고, 논밭을 잃고, 1년 농사를 하루 아침에 날려버린 사람들의 안타까움 때문에 답답한 것만이 아니라 우리의 사회적인 현실도 우리를 허탈하게 만듭니다.
금년에도 전세값이 30-40%씩 올라서 더욱 변두리로 쫓겨나야 하는 사람들이 그처럼 많은 것도 정말 황당한 노릇입니다. 주택임대차보호법에는 전세 보증금을 5% 이상 올리지 말도록 되어 있지만, 아무도 지키지 않는 법이니 "돈 없는" 사람들 약올리는 법일 따름입니다.
또한 이회창씨 아들의 병적카드 한 장에 그토록 많은 잘못들이 생길 수 있는 확률이 어떤 칼럼니스트의 계산으로는 "100억분의 1"이라고 하는데, 그처럼 희한한 문제를 놓고 정치권이 매일같이 악다귀를 쓰고 있으니 참 답답합니다.
더욱 답답한 것은 허원근 일병이 죽은 시체로 발견된 지 18년 만에,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를 통해 자살이 아니고 타살이었다는 사실이 밝혀졌는데도, 당시 중대장이건, 대대장이건, 연대장이건, 사단장이건, 헌병대건, 기무사건, 국방부 감찰실이든, 육군본부 범죄수사단이든, 어느 놈 하나 나서서 그 부모님 앞에 무릎을 꿇고, "내가 조작했으니 뒤늦게라도 용서해주십시오"라고 말하는 놈 하나 없으니, 참으로 답답한 노릇입니다. 그 부모님의 심정이 얼마나 허탈하겠습니까? 1981년부터 83년까지 데모에 가담했던 대학생 1천1백명을 강제징집해서 녹화사업을 벌여, 20여 명의 젊은이가 의문사로 죽었는데도 전두환씨는 소환에도 응하지 않으니, 참 답답합니다.
다음 주 월요일 16일에는 진상규명위원회 활동이 끝나, 접수된 85건 가운데 34건만 종결처리하고 나머지는 "진상규명 불능"으로 남겨놓은 채, 그 활동이 영원히 끝난다니 정말 안타깝고 답답한 마음입니다.
"돈 있고 빽 있는 사람들"은 그 아들들을 군대에 보내지 않고도 큰소리 치며 살고, "돈 없고 빽 없는 사람들"은 아들을 군대에 보냈다가 시체가 되어 돌아와도, 그의 죽음이 자살이 아니고 술에 취한 상관이 총을 쏜 것이며, 나중에 확인사살까지 한 것이었다는 사실이 18년만에 밝혀졌는데도 불구하고, 어떤 놈 하나 책임지지 않는 나라 "대-한민국" 국민으로 살고 있다는 것이 정말이지 화가 나서 쉽게 잠들 수 없을 만큼 답답합니다.
태풍과 같은 자연재해야 피할 수 없는 것이라 해도, 의문사에 대한 진상규명조차 제대로 하지 못하는 나라에 사는 것이 정말로 답답합니다. 돈 있는 사람들은 전세값 올려 받아 이자놀이 하면서 으시대지만, 돈 없는 사람들은 풍성한 생명이 아니라, 분노와 허탈 속에 살아갑니다.
그밖에도 우리가 여러 가지 일들로 인해 황당하고, 허탈하고, 답답할 때면, 도대체 "산다는 게 무엇인가?"라는 근본적인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지며 탄식하게 됩니다. "도대체 산다는 게 무엇인가?"

3.

지금부터 4천여 년 전, 이집트에서 피라미드를 쌓는 데 동원되었던 노예들도 아마 그처럼 답답했을 것입니다. 그리스 역사가 헤로도투스의 기록에 따르면 노예 10만 명이 20년 동안 일해서 피라미드 한 개를 만들었다고 합니다. 높이가 160미터에 달하는 피라미드 하나를 쌓아올리기 위해서, 2.5톤짜리 바위돌 2백만 개를 쌓아올렸다는 것이지요. 그 사막 한 가운데서, 그늘이라곤 찾아볼 수 없는 뙤약볕 아래에서 채찍을 맞아가며 왕 한 사람의 무덤을 만들기 위해, 10만 명의 노예가 20년 동안 죽도록 고생해서 만든 것이 그 피라미드 한 개라는 말입니다. 그 노예들도 아마 힘들고 답답한 심정이 들 때마다, 도대체 "산다는 게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던지며 탄식했을 것입니다.

또한 지금부터 2500여 년 전, 바빌로니아의 느부갓네살 왕 때 바빌론 성벽을 쌓았던 사람들도 마찬가지로 답답한 심정이었을 것입니다. 바벨론 성벽 역시 헤로도투스의 기록에 따르면, 성벽이 외벽이 있고 내벽이 있는데, 그 높이가 100미터에 달했고, 그 성벽 위에서 말 네 마리가 끄는 마차를 돌릴 수 있었다고 합니다. 상상이 되십니까? 만리장성 위에서는 말 네 마리가 끄는 마차가 지나갈 수는 있을지 몰라도, 그 마차를 돌릴 수는 없을 것입니다. 그러니 바벨론 성벽이 얼마나 높고 넓은 성벽이었겠습니까? 그 공사장에 동원된 사람들이 몇 년 씩 진흙 벽돌을 찍어 그처럼 높고 넓은 성벽을 쌓으면서, 사람들이 하루하루 얼마나 답답했을 것이며, 얼마나 자주 도대체 "산다는 게 뭔가?" 하고 질문을 던지며 탄식했겠습니까? 이집트와 바빌로니아에서 그토록 뙤약볕 아래에서 죽을 고생을 하던 사람들은 어째 반란을 일으킬 생각조차 못했을까요?

4.

당시 이집트나 바빌로니아는 제정일치시대로서 왕들과 제사장들이 모두 창조신화를 통해 사람들을 세뇌시키고 있었지요. 이집트와 바빌로니아의 창조신화에 따르면, 오직 "왕족들만 신의 자녀들이며, 신의 모습으로 창조되었고, 나머지 모든 인간들은 신의 노예로 지음 받았다"고 가르쳤습니다. 왕족을 제외한 모든 인간들은 태어날 때부터 태양신 레와 바빌로니아의 수호신 마르둑의 노예로 태어났다는 것이지요. 그러니 노예로 태어나 노예로 살다가 노예로 죽는 것이 정한 이치이고 우주의 질서이기 때문에, 설령 너희가 반란을 일으킨다 해도 우주적 질서를 바꾸지는 못한다는 것이지요. 모두가 그렇게 가르치니 모두가 그런 줄 알고 노예로 사는 것이 당연한 것으로 믿을 도리 밖에 없었을 것입니다. 쓰레기 같은 존재로 살 수밖에 없다고 믿고 사는 수밖에 달리 도리가 없었을 것입니다. 땅을 치고 탄식해봐야 소용이 없다는 것이지요.

그러던 어느날 어느 노예가 뜻밖에 자기 아들도 그 공사장에 끌려와 일하고 있는 것을 보게 됩니다. 기가 막혔을 것입니다. "내 할아버지도, 내 아버지도, 이 공사장에 끌려와 평생을 살았고, 나 역시 십 수년을 뙤약볕 아래서 이 고생하며 살고 있는데, 내 아들마저 평생 이 고생하며 살아야 한다는 말인가?" 피가 거꾸로 치솟았을 것입니다. 팔자라고 하기에는 너무 가혹한 팔자였습니다. 하도 답답해서 일할 기운도 없고 잠도 이루지 못하던 그는 마침내 하늘을 향해 종주먹을 휘두르게 되었을 것입니다.

"하나님, 이게 무슨 놈의 세상입니까? 당신이 하나님이라면 어떻게 이럴 수가 있습니까? 할아버지, 아버지, 그리고 나까지 이 고생하는 것은 참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내가 목숨처럼 아끼는 내 자식마저 나처럼 이 고생을 하며 살아야 한다는 것은 도저히 견딜 수 없습니다. 자식 놈이 나처럼 이런 모진 고생을 하면서 살아야 한다는 것을 보고는 도저히 눈을 감을 수가 없습니다. 저 제사장들이 가르치는 것이 사실입니까? 왕족들만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받은 것이고, 우리 모두는 노예로 살다가 노예로 죽는 팔자가 당신이 정해준 것입니까?"
분을 이기지 못한 그는 하늘을 향해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고 몇 주일이고 몇 달이고 머리를 감싸쥐고 하늘에 대고 종주먹을 휘둘렀을 것입니다.

5.

그가 마침내 어느날 새벽에 하늘의 음성을 듣게 되었습니다. 저 제사장들이 하는 말은 새빨간 거짓말이다. "왕족들만 신의 모습으로 지음받은 것이 아니라, 모든 인간이 신의 모습으로 만들어졌다." 그 음성을 듣는 순간 그가 어떻게 했겠습니까?
그는 자신의 귀를 의심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 음성은 분명히 하늘의 음성이라는 사실을 확신할 수 있었습니다. 그는 가슴이 두근거려 견딜 수 없었을 것입니다. 하늘을 향해 종주먹을 휘둘렀던 자신의 어리석음을 용서해달라고 빌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는 자신이 만나는 사람들마다 자신이 들은 하늘의 음성을 전파했습니다. 그후 그가 어찌 되었겠습니까? 그는 기필코 경찰에 체포되어 고문을 당하고 쥐도 새도 모르게 처형되었을 것입니다. 당시의 권력 기반이 그 인간창조의 신화에 있었기 때문에, 그 신화를 뒤집은 자는 분명히 국가보안법 위반에 해당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가 들은 하늘의 음성은 후대에 전해져 창 1장 27절 이하에 기록으로 남았습니다. 왕족만이 아니라 우리 모두가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받았다고 말입니다.

6. 우리 모두가 하나님의 형상, 하나님의 모습으로 만들어졌다는 말은 무슨 뜻인가요?

첫째로 "돈 있고 빽 있는 사람들"만이 하나님처럼 존귀한 것이 아니라, "돈 없고 빽 없는 사람들"도 모두 하나님처럼 존귀한 사람들이라는 뜻입니다. 김대중씨건, 이회창씨건, 정몽준씨건, 어느 누구든 간에, 그 사람들이 만일에 "돈 있고 빽 있는 사람들만" 존귀하다고 믿고, "돈 없는 사람들"은 쓰레기 같은 사람들이라고 믿는다면, 그들은 하나님을 믿는 것이 아니라, 태양신을 믿거나 마르둑 신을 믿는 사람들입니다. 여러분들 가운데도 만일에 가난한 사람들이나 장애인이나, 정신병자나 매춘부는 모두 쓰레기 같은 사람들이라고 믿고 고개를 돌린다면, 여러분들도 하나님을 믿는 것이 아니라, 권력의 신, 자본의 신을 믿는 사람들이라는 말입니다.

우리 모두가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받았다는 말씀은 둘째로 우리 모두가 하나님처럼 거룩한 사람들이라는 뜻입니다. 우리가 비록 진흙탕 같은 세상 속에서 때로는 스스로를 속이고 때로는 서로를 속이면서 살고 있지만, 아무리 우리가 하나님과 사람들 앞에서 부끄러운 생활을 해왔다 하더라도, 하나님께서는 본래 우리를 당신처럼 거룩한 존재로 만드셨다는 말씀입니다. 하나님을 아는 것은 하나님에 의해 변화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거룩하신 하나님이라고 고백하는 것은 하나님께서 우리가 거룩한 사람들로 살아가기를 원하신다는 사실을 믿고, 우리가 거룩한 사람으로 변화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 앞에 나아와 예배드리는 것은 우리가 온 천하보다도 귀한 존재이며, 우리가 원래 하나님처럼 거룩한 존재들이라는 사실을 다시금 깨닫고, 하루하루 거룩하게 살기를 하나님께서 원하시기 때문입니다. 여러분들만이 아니라, 여러분들이 미워해서 상종하기를 싫어하는 사람들조차도 하나님께서는 거룩한 존재로 만드셨다는 말씀입니다.

셋째로 우리는 창조주 하나님처럼 창조적으로 살아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우리는 결코 운명의 노예가 아니라는 말씀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결코 쳇바퀴도는 다람쥐의 형상으로 만드시지 않으셨습니다. 우리는 결코 덧없는 일상의 노예가 아닙니다. 우리는 결코 권력의 노예가 아니며, 돈의 노예가 아니며, 명예의 노예가 아니라는 말씀입니다. 창조주 하나님께서 온갖 정성을 다 쏟아 저 들의 꽃들과 새들을 가꾸시고 보호하시는 것처럼, 우리들 역시 우리의 생활에 우리의 혼을 다 쏟아부어 창조적으로 살아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척박한 세상 속에 웃음을 창조하고, 답답한 세상 속에 사랑을 창조하고, 허탈한 세상 속에 따스함을 창조하기 위해 우리의 정성을 다 쏟으며 살아야만 한다는 말씀입니다.

7.

흰 이슬이 맺혀 가을이 시작되는 이 아름다운 절기에, 때로 답답하고 허탈해서 "산다는 것이 무엇인가?" 하고 묻게 될 때마다, 낙엽이 떨어져 나뒹그는 모습을 보며 "산다는 것이 무엇인가?" 하고 묻게 될 때마다, 오늘의 본문에 나타난 하나님의 음성을 들으시기 바랍니다. 저와 여러분 모두가, 돈 있고 빽 있는 사람들만이 아니라 모든 사람들이,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받은 존재라는 하나님의 엄숙한 음성을 기억하고, 존귀하고, 거룩하며, 창조적인 인생을 살아감으로써,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더욱 풍성한 생명을 누리며 사는 하나님의 아름다운 자녀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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