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설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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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05.06

연모의 방식

조회 수 2781 댓글 3
1.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주님의 평화가 여러분과 함께 하시길 빕니다. 우리가 존경하는 이계준목사님께서 은퇴를 하신 후라, 허전한 마음 매우 큽니다. 그러나 너무 서운해 하지 마십시오. 앞으로 계속 우리와 함께 하시면서 좋은 말씀을 해주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특히 신반포사이버교회를 통해서도 계속적으로 우리에게 좋은 가르침을 주시리라 믿습니다. 다만 우리가 해야 할 일이 하나가 있습니다. 그것은 이목사님께서 건강하게 오래오래 사실 수 있도록 그분을 위해 기도하시고 맛있는 냉면 자주 사드리시는 것입니다. 전에 이목사님께서 박대선 감독님께 하시는 말씀을 들었는데, 박감독님이 120세가 되면 이목사님께서 그 이후의 식사를 책임지시겠다고 하신 것 같습니다. 목사님, 맞습니까? 저는 120세는 좀 심하고, 이 목사님께서 100세가 되면 그 후부터 냉면값은 다 제가 내겠습니다. 저도 가끔 입술에 침을 바르고 거짓말을 하는데, 이 말은 진짜입니다. 부디 100세 이후까지 건강하시길 빕니다.
저는 지난 겨울 몇 개월 동안 TV보는 재미로 살았습니다. 여러분은 어땠는지 모르겠지만, 저는 <대장금>을 즐겁게 시청한 바 있습니다. 선거철이 끝나면서 좀 안정이 되었지만, 그 전까지 이제 장금이도 끝났는데 무슨 재미로 사나 싶을 정도였습니다. 한번은 집사람이 맛있는 음식을 하였길래 “당신의 음식 솜씨는 장금이수준이야” 했더니 싫지는 않은 표정이었습니다. 또 한번은 나도 모르는 사이에 “야 장금이 참 예쁘다”라고 했더니, 집사람이 저를 째려보면서 채널을 다른데로 돌려버리는 것이었습니다. 아뭏튼 이렇게 재미있게 그 프로를 보다가 종영을 한 후, 한참동안 그렇게 허전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런데 종영을 앞둔 한 두 주 전엔가 장금이를 사이에 두고 중종과 동부승지 민정호 영감인 지진희 사이에 삼각관계가 형성된 스토리가 있었습니다. 임금이 장금이를 연모하게 된 것이지요. 이것을 눈치챈 대왕대비가 중전에게 명을 내립니다. 어서 첩지를 내려 장금이를 중종의 후궁으로 삼구요. 그래서 임금이 남몰래 외간여자와 데이트하는 어색한 환경을 없애라고 명합니다. 대왕대비나 중전으로서는 당연한 일이었습니다. 그런데 중종은 고민합니다. 왜냐하면 후궁으로 삼는 것이 진정으로 장금이를 사랑하는 방식인가 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왕이니까 당연히 장금이를 후궁으로 삼을수는 있겠지만, 그렇게 하면 장금이가 후궁이 되는 것을 기뻐할지 고민하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그는 장금이를 후궁으로 맞이할 것인가 아니면 그녀를 온 대신들이 반대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주치의로 임명할 것인가 사이에서 갈등하였던 것입니다. 결국 중종은 장금이에 대한 연모의 방식으로써 그녀를 후궁으로 삼는 것을 포기하고, 장금이에게 정삼품상당의 대장금에 임명하여 자신의 주치의로 일하게 하였습니다. 정말 아름다운 대장금에 대한 중중의 연모의 방식입니다.
한편 동부승지 민정호도 오래 전부터 장금이를 사랑해왔습니다. 그래서 장금이가 제주도로 귀향을 갔을 때도 장금이를 찾아 관직을 버리고 제주도로 향했고, 장금이가 전염병이 창궐하여 한 마을에 갇혀있을 때에도 그녀를 찾아 위험을 무릎쓰고 그 마을에 들어갔던 것입니다. 이렇게 즐거우나 괴로우나 장금이와 함께 했던 민정호는 이제 장금이와 함께 도망가서 그녀와 함께 평생 살 것인지 아니면 자신이 귀양가는 길이 있더라도 그녀가 의사의 길을 갈 수 있도록 왕에게 주청을 넣어 그녀가 왕의 주치의가 되는 것을 도와야 할지 그 양자의 갈림길에 서게 됩니다. 이 순간에 민정호는 큰 결단을 내립니다. 그래서 그는 왕을 찾아갑니다. 그리고 왕에게 말합니다. 장금이를 왕의 주치의로 임명해 달라고 말입니다. 비록 경국대전과 조선의 전통에 따르면 여자는 주치의가 될 수 없지만, 조선에 그만한 의학실력을 갖춘 사람이 없으며, 그녀는 분명 왕과 백성을 위해 큰 의술을 펼칠 수 있을 것이라고 간청합니다. 그러면서 자신이 이렇게 주청을 한 이유로 귀양을 보내달라고 말합니다. 이것이 바로 민정호가 장금이를 사랑하는 연모의 방식이었습니다. 다시말해 민정호의 연모의 방식은 장금이를 자신의 소유로 삼는 것이 아니라, 장금이가 꿈꾸는 의관이 되도록 돕는 것, 조선에서 제일가는 의사가 되고 조선역사에 여성 최초로 역사에 길이 남을 의사가 되도록 죽음을 무릎쓰고 끝까지 돕는 것, 그것이었습니다.
저는 그 드라마를 보면서 서로 다른 연모의 방식을 보았습니다. 장금이를 사랑하는 중종과 민정호의 서로 다른 연모의 방식을 보았습니다. 중종은 장금이를 진정으로 사랑하기 때문에 그녀를 자신의 후궁으로 삼지않고 자신의 내의관으로 삼았고, 민정호는 장금이를 진정으로 사랑하기 때문에 그녀와 함께 하는 길 대신 자신은 귀양을 가더라도 장금이가 내의관이 되는 길을 도왔던 것입니다. 그런데 여러분, 이 두 사람의 연모의 방식에 공통점이 무엇입니까? 비록 중종과 민정호에게 있어서 장금이를 사랑하는 연모의 방식은 서로 달랐지만, 하나 위대한 공통점이 있는데, 그것은 무엇입니까? 그것은 자신이 사랑하는 여인을 사랑하는 연모의 방식으로써 소유의 방식을 택하지 않고, 사랑하는 이가 자신의 꿈을 잘 실현할 수 있도록 돕는 것, 그것이 그들의 공통된 연모의 방식이었던 것입니다. 이것이 우리의 마음을 울리고 우리에게 감동을 주었던 것입니다. 사랑이란 무엇입니까? 그것은 소유가 아니라 그 자신이 되도록 돕는 것입니다. 그것이 사랑입니다.

2.
오늘 본문을 봅시다. 오늘 본문은 우리에게 또 다른 형태의 위대한 연모의 방식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오늘 본문말씀은 이렇습니다. 예수께서 유월절을 엿새 앞두고, 그러니까 예수께서 십자가를 지기 위해 예루살렘으로 입성하는 종려주일 이틀전에 베다니로 가셨습니다. 그곳은 예수께서 죽은 자들 가운데서 살리신 라사로가 사는 고장이었습니다. 마태복음 26장 6절에 의하면 그 집은 나병환자 시몬의 집이라고 합니다. 거기에서 예수를 영접하는 만찬회가 베풀어졌고, 라사로는 손님들 사이에 끼어 예수와 함께 식탁에 앉아 있었고 마르다는 시중을 들고 있었습니다. 그 때 마르다의 동생 마리아가 매우 값진 순 나드 향유 한 근을 가지고 와서 예수의 발에 붓고 자기 머리털로 그 발을 닦아 드립니다. 마태복음과 마가복음에는 그 여인이 누군인지 밝히고 있지 않지만 요한복음은 분명히 그 여인이 마리아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바로 마리아가 예수를 위해 자신이 아껴둔 나드 향유 한 근을 예수의 발에 붓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자 온 집안에 향유 냄새가 가득 찼습니다. 얼마나 황홀한 모습입니까? 이에 대하여 예수의 제자로서 장차 예수를 배반할 가룟 유다가 “이 향유를 팔았더면 삼백 데나리온은 받았을 것이고 그 돈을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누어 줄 수 있었을 터인데 이게 무슨 짓인가?”하고 투덜거립니다. 여기서 삼백 데나리온(로마화폐)은 당시 노동자 삼백일치 봉급에 해당하는 큰 돈입니다. 그러니까 제자들의 불평이 크게 틀린 것도 아니라는 생각도 듭니다. 아무튼 그렇게 제자들이 불평하자 예수께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저를 가만 두어 나의 장사할 날을 위하여 이를 두게 하라 가난한 자들은 항상 너희와 함께 있거니와 나는 항상 있지 아니하리라.”
오늘 본문을 통해 우리는 두가지 형태의 연모의 방식을 보게됩니다. 하나는 마리아의 연모의 방식이요 또 하나는 예수의 연모의 방식입니다. 먼저 마리아의 연모의 방식은 예수의 발에 향유를 붓는 일이었습니다. 예수의 발에 나드향유를 붓는 마리아의 연모의 방식은 죽음 앞에 서 있는 한 인간에 대한 최대한의 예의라는 사실입니다. 나드 향은 단순한 향수가 아닙니다. 몸의 냄새를 제거하기 위한 향수가 아니라는 점입니다. 오히려 그것은 나르도스라는 인도산의 식물에서 짠 귀한 향유로서 진통제의 역할을 하는 향유입니다. 여기서 마리아가 나드향유를 예수에게 붓었다는 것은 그녀가 예수에게 향기좋은 향수를 선물했다는 차원으로 이해하면 곤란합니다. 오히려 그것은 마리아가 예수의 죽음을 미리 직시하고 그녀가 예수의 죽음을 위해 일종의 종유성사를 실천한 것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예수의 죽음을 미리 준비하는 것이지요. 그래서 예수께서도 그녀가 하는 일은 “나의 장사할 날을 위하여”(7절) 하는 것이라고 말씀하셨던 것입니다. 이처럼 마리아는 예수가 져야할 십자가의 고통을 미리 아파하면서 예수의 고통을 경감시키기 위한 하나의 상징적 행위로서 진통제 역할을 하는 나드향을 예수에게 붓는 것입니다. 가톨릭교회의 성사로 표현하면 죽음을 앞둔 병자를 위한 종유성사를 행한 것입니다. 이것이 예수의 죽음을 가장 먼저 준비한 성서의 이야기인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마리아의 연모의 방식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마리아가 예수를 누구보다도 잘 아는 사람이었음을 알게 됩니다. 예수를 따라다녔던 12명의 제자들은 모두 예수께서 왜 예루살렘에 올라가는지 그 이유를 몰랐지만, 마리아는 그것을 알았던 것입니다. 그녀는 예수가 십자가를 지러 예루살렘에 올라간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온 인류를 위해 예수께서 죽음을 맞이해야 한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이렇게 마리아는 아주 예민한 영적 능력으로 예수께서 죽음을 앞두고 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것을 직감한 그 여인은 예수의 죽음을 앞두고 견딜 수 없었습니다. 예수를 사랑하기 때문에 예수의 죽음은 도저히 받아들일 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죽으시면 않된다고 말려야할 형편이었습니다. 베드로처럼 “그러시면 않됩니다”(막8:32)하고 바지자랑을 잡으면서 막고 싶은 심정이었습니다. 그러나 또 한편으로 마리아는 예수를 진정으로 사랑하기에 예수께서 걸어가셔야 할 길을 걸어가도록 도와야 한다는 또다른 내면의 양심의 소리를 들었습니다. 바로 이 양자 사이에서 마리아는 끊임없이 고민하고 고민하였던 것입니다. 그러던 중 그녀는 결심하게 됩니다. 그래서 그녀는 자신이 아껴둔 나드향을 예수의 죽음을 위해 사용한 것입니다. 이것이 예수를 향한 마리아의 연모의 방식이었습니다. 얼마나 아름다운 이야기입니까? 사랑하는 여러분, 여러분은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어떻게 사랑을 표현하고 있습니까? 바로 마리아는 값비싼 향유를 그에게 부음으로써, 예수께서 가고자 하시는 십자가의 길을 미리 예비함으로써 그렇게 자신의 사랑을 고백했던 것입니다.
둘째로 마리아를 향한 예수의 연모의 방식을 보도록 합시다. 예수께서는 마리아가 자신의 발에 값비싼 나드향유를 붓자 당황하는 태도를 보이기보다는 오히려 기다렸던 일이 발생한 듯이, 기쁨의 반응을 보이고 있습니다. 오히려 당황하는 태도를 보이는 쪽은 가룟 유다를 비롯한 제자들이었습니다. 특히 유다는 공금을 종종 횡령하는 습관이 있었기 때문에, 혹시 마리아가 나드향유를 가난한 자에게 나누어달라는 명목으로 예수에게 헌금하면 자신이 그것을 관리한다는 핑게로 그 돈을 횡령할 수 있었을텐데 하는 의미에서 아쉬워하는 태도를 보입니다. 이것을 알아챈 예수께서는 유다와 제자들을 꾸짖으면서 마리아가 훌륭한 일을 행하였다고 칭찬하고 있습니다. 특히 오늘 본문에는 없지만, 마태복음 26장13절에 따르면 예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온 천하에 어디서든지 이 복음이 전파되는 곳에는 이 여자의 행한 일도 말하여 저를 기념하리라 하시니라”(마태26:13). 여기서 우리는 또 다른 형태의 연모의 방식을 보게 됩니다. 그것은 예수의 사랑의 수용방식입니다. 예수는 자신에게 주어진 사랑을 거부하지 않고 그것을 기쁨으로 수용하고 있는 것입니다. 예수는 항상 무엇인가 주는 자만이 아니라 기꺼이 받음으로써 진정한 것을 주는 분입니다.
이것이 적어도 오늘 본문 말씀 속에서 찾을 수 있는 예수의 연모의 방식입니다. 예수께서는 제자들을 사랑하되 끝까지 사랑했습니다. 그리고 예수께서는 제자들을 위해, 그리고 온 인류를 위해 자신의 목숨을 기꺼이 내 놓았습니다. 인류를 향한 위대한 연모의 방식입니다. 그러나 적어도 오늘 본문말씀은 예수의 연모의 방식이란 무조건 주는 자만이 아니라 자신의 죽음을 미리 예견하고 그것에 경의를 표하는 이의 마음을 기꺼이 헤아리고 그것을 수용하는 방식도 있다는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무엇을 말합니까? 그것은 상대방을 상대방되게 하는 것입니다. 제자를 제자되게 하는 것이 사랑이요, 사랑을 표현하는 사람을 그 사람되게 하는 것, 그것이 예수의 연모의 방식인 것입니다.
자식을 향한 부모의 사랑도 그런 것 아니겠습니까? 자식을 향한 부모의 사랑은 자신의 목숨까지도 아깝지 않게 자식을 위해 내어놓는 것이지만, 그러나 자식이 부모님에게 전하는 작은 편지 하나, 작은 용돈에 감동하는 것 아닙니까? 자식의 사랑의 표현을 기꺼이 수용하는 것, 그래서 자식이 그냥 자식이 아니라 참 효심이 넘치는 자식이 되게 하는 것, 그것이 부모가 자녀에 대하여 갖는 연모의 방식 아닙니까? 누가 무어라 해도, 자신에게 주어진 상황을 그대로 수용할 수 있는 능력, 아니 그것을 기꺼이 고맙게 수용할 수 있는 방식, 그래서 주는 자로 하여금 마음에 기쁨을 갖도록 하는 것, 그것 역시 우리가 소유해야할 연모의 방식이 아닌가 싶습니다. 만약 마리아가 값비싼 향유를 예수의 발에 부을 때 예수께서 그것을 막았거나 마리아를 꾸짖었다면, 무슨 일이 벌어졌을까요? 어쩌면 우리는 예수께서 한 행동이 잘 한 행동으로써 그분이 훌륭한 합리주의자라고 잠시동안 박수를 쳤을지 모르지만, 우리는 그런 예수를 일컬어 그리스도로 고백하기에는 어려웠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리스도는 우리의 구원을 위해 아낌없이 자신을 세상에 내어주시는 분이지만, 동시에 자신에게 사랑을 고백하는 이들에게 내적인 기쁨을 갖도록 격려하고 그럼으로써 자신의 꿈을 실현하도록 돕는 사랑의 폭이 깊고 또 넓은 그런 분이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예수께서 보여주신 연모의 방식은 마리아의 향유를 기꺼이 수용함으로써 인간으로 하여금 인간되게 하는 것, 마리아로 하여금 마리아되게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마리아가 자신을 향한 사랑을 마음을 표현할 수 있도록 격려하는 것, 그것이 바로 예수의 연모의 방식이었던 것입니다.

3.
사랑하는 여러분, 이번 달은 가정의 달입니다. 어린이날이 있고, 어버이날이 있고, 부부의 날(5.21)의 일이 있습니다. 모두 하나같이 가정의 소중함과 사랑을 다시 한번 강조하는 절기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이 의미있는 절기에 우리는 어떻게 보내야 하겠습니까? 저는 오늘 여러분에게 연모의 방식을 말씀드렸습니다. 여러분이 가정의 자녀와 아내, 그리고 남편을 사랑하고 연모하신다면, 그것을 한번 표현하시길 바랍니다. 중종과 민정호처럼 소유의 방식 대신 존재를 존재되게 하는 방식으로, 예수를 예수되게 하는 연모의 방식을 한번 찾아보시길 바랍니다. 마리아는 예수의 죽음을 미리 알고 그것을 위해 자신이 아껴두었던 나드 향유를 예수의 발에 부었습니다. 이로써 예수를 예수되게 하였던 것입니다. 여러분, 여러분은 어떻게 여러분의 자녀를 여러분의 자녀되게 하시겠습니까? 마리아는 예수의 죽음을 가로막는 존재가 아니라, 오히려 예수의 죽음을 안타까우면서도 기꺼이 그것을 미리 준비하는 연모의 방식을 우리에게 보여주었습니다. 예수의 발에 향유를 붓는 사건은 마리아가 예수를 예수되로록 돕는 사건이요, 그래서 예수로 하여금 당당하게 십자가를 지도록 용기를 붇돋아주고 격려하는 연모의 방식이었던 것입니다. 동시에 예수는 마리아를 어떻게 연모하였습니까? 세상의 기준대로, 유다가 제안한 세상의 방식대로 마리아를 연모하는 것이 아니라, 마리아의 연모방식을 그대로 수용해 줌으로써, 마리아를 마리아되게 함으로써 예수는 마리아에 대한 사랑을 표현했던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사랑은 소유하는 것이 아닙니다. 사랑은 상대방으로 하여금 상대방 되게 하는 것입니다. 존재로 하여금 존재되게 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나의 가치관과 맞지 않을지라도 그것을 수용하는 것입니다. 타자를 타자로 그대로 인정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자신의 꽃에서 존재의 꽃이 피도록 물을 주고 거름을 주고 돕는 것입니다. 십자가를 진다는 것, 얼마나 힘든 결정이었겠습니까? 아무리 하나님의 아들 예수라 하더라도 얼마나 힘든 일이었겠습니까? 그러나 예수는 십자가를 짐으로써 자기를 완성했습니다. 예수께서 그 일을 하는데 마리아의 힘과 격려가 큰 보탬이 되었습니다. 예수께서는 마리아의 용기와 격려로 십자가를 끝까지 질 수 있었던 것입니다. 이처럼 사랑은 상대방의 꿈을 완성시키는 것입니다. 인류를 구원하고자 했던 예수의 꿈은 바로 이렇게 한 여인의 사랑과 격려로 이루어질 수 있었던 것입니다.
가정의 달 오월, 여러분은 여러분이 사랑하는 사람들을 위해 어떻게 연모의 방식을 실천하겠습니까? 사랑하는 사람의 진실한 꿈을 축하해주고 격려해 주시길 바랍니다. 그것이 어색한 일이요, 힘든 일이라 하더라도 그것을 축하는 사람, 그 사람은 마리아가 우리에게 영원히 기억되듯이 위대한 사랑의 사람으로 기억될 것입니다. 여러분은 어떻게 남편을 남편되게 하고, 아내를 아내되게 하시겠습니까? 사랑하는 아내와 남편, 그리고 자녀를 향한 여러분의 연모방식은 무엇입니까? 사랑은 나의 꿈에 상대방을 끼워 맞추는 것이 아니라, 상대방의 꿈이 훌륭하게 실현될 수 있도록 진심으로 돕고 축하하는 것입니다. 아멘.

연모의 방식

요한복음 12: 1-8
2004. 5. 2. 신반포교회, 손원영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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