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설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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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아름다움은 선(善)이요, 추함은 악(惡)이다”
"목숨이 붙은 것은 일단 이쁘고 봐야 한다"
외모를 중시하는 대표적인 표현입니다. 미국 텍사스 오스틴(Austin) 대학에서는 학생들에게 그들이 전혀 모르는 캐나다의 국회의원 후보 79명의 사진을 보여주고, 이들 중에 매력적인 외모를 가진 이들과 그렇지 않은 이들을 고르라고 했습니다. 그 결과, 16명이 매력적인 사람으로 뽑혔고, 15명이 전혀 아니올시다의 외모로 뽑혔는데, 재미있는 것은 실제 선거 결과 매력적이라고 뽑힌 후보들의 거의 대부분이 당선된 데 비해, 그렇지 못한 후보들은 한 명을 제외하고는 모두 낙선했다는 사실입니다. 이러한 사고의 용어를 beautism이라고 합니다. 외모가 지적능력보다 우월하다는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갈수록 늘어가고 있습니다. 가수가 뜨느냐 마느냐의 기준도, 노래실력보다는 외모가 더 중요하게 작용하고 있습니다. 외모에 신경 쓰는 것은 여자들이나 하는 일이라던 말도 옛 말입니다. 남성들도 여성 못지않게 자신의 용모나 신체에 대한 관심이 높습니다. 미국에는 매력연구가라는 직업이 있는 모양인데, 그 사람들의 분석에 의하면, 잘 생기고 스타일 좋은 남자는 좀 더 쉽게 진급하며 출세가도를 달린다고 평가합니다.
우리나라도 취업시즌이 되면 도서관에서 책보는 시간보다 성형외과에 가있는 시간이 더 많다고 합니다. 아내의 화장품을 훔쳐 바르는 남편도 상상외로 많다고 합니다. 남성들이 이토록 외모에 집착하는 현상은 '아도니스 콤플렉스' (Adonis Complex)라고 합니다. 아도니스는 고대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미청년인데, 미의 여신 아프로디테의 애인이었다가 죽어서 아네모네꽃으로 변했다는 인간입니다. 외모를 중시하는 것이 사회적 조류가 되었다는 것은 안타까운 일이지만 인정할 수밖에 없는 현실이 되었습니다.
지금도 마찬가지 이지만, 얼짱, 몸짱이 유행하였습니다. 그 중에서도 웃긴 사건은 ‘강도얼짱’이었습니다. ‘얼굴이 예쁘다’는 이유로 공개 수배자의 인터넷 팬클럽이 생기기도 합니다. ‘강도얼짱’으로 알려진 특수강도 수배자의 사진이 공개되자, 강도얼짱 이미혜 등 팬클럽 까페를 개설하였고, 회원이 7000여명에 육박하는 것이 6개가 등장했다고 합니다. 더 문제가 되는 것은 네티즌들이 ‘얼짱 이씨가 설마 범죄를 저질렀겠느냐’며 우호적인 글들이 수두룩하기도 합니다. 외모가 이쁘면 모든 것이 용서받는 사회가 된 듯 합니다. 이러한 행태는 외모지상주의의 단편적인 모습을 볼 수가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분명히 명심해야 할 것은 아름다움에 관해서, 한 시대의 사회 문화가 요구하는 미의 기준에 너무 예민할 필요는 없다는 것입니다. 현재 우리 젊은이들에게 퍼져있는 미(美)의 기준은 키 크고(키만 커서는 안되고 다리가 길어야 하더군요), 눈 크고, 코높고, 얼굴의 각이 분명하고 피부가 하얀 사람입니다. 한 마디로 서구의 백인을 흠모의 대상으로 놓고 있는 것입니다. 외모를 추구하는 것은 사람의 발전을 위해서 긍정적인 현상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분명히 명심해야 할 것은 '미의 기준'을 바로 잡는 것입니다.

2. 오늘 본문의 말씀은 예수께서 가장 아름다운 ‘미의 기준’을 우리에게 제시해 주고 있습니다. 예수께서 가버나움으로 가셨습니다. 이미 사람들은 예수님이 모든 병자들을 치료해 주신다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사람들이 예수를 만나기 위해서 이리저리 모여듭니다.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모여 들어서, 문 앞조차도 들어설 자리가 없었습니다. 여전히 예수께서는 많은 사람들 앞에서 말씀을 전하고 계셨습니다.
그런데 어느 때와는 다르게 한 중풍병 환자를 네 사람이 데리고 왔습니다. 네 사람의 동일한 목적은 한 중풍병 환자가 고침받기를 소망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습니다. 수많은 군중들이 모여 있기에 예수께로 데려 갈 수가 없던 것입니다. 네 사람은 아마도 어떻게 하면 좋을까 걱정했을 것이고, 실망했을 것입니다. 또한 네명의 사람들은 예수님께 데려가기가 어렵겠구나 포기하려고도 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 중의 한명이 ‘지붕을 걷어내고, 구멍을 뚫어서, 중풍병 환자를 내리자’고 제안을 했을 것입니다. 그 제안대로 네 사람은 한 마음과 목적으로 지붕을 걷어내고, 구멍을 뚫고, 중풍병 환자를 내렸습니다. 이렇게 하기란 쉬운 결정이 아니였습니다. 자신에게 이익이 되지 않는데, 그냥 돌아갈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네 사람은 중풍병환자를 고치겠다는 일념으로 그들의 팔과 발로 지붕을 걷어냅니다. 그리고 구멍을 뚫습니다. 중풍병 환자를 네 사람이 한 힘으로 예수께 내립니다. 아마 주위에 다른 사람들은 그 사람들의 행동을 질책했을 것입니다. 방해가 된다고 했을 것입니다. 그렇지만 상관하지 않았습니다. 중풍병을 고치는 것, 사람을 살려내는 것이 그들의 한결같은 목적이었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모습을 지켜보던 예수님은 “그들의 믿음을 보시고” 중풍병 환자에게 ‘아들아, 네 죄가 용서함을 받았다’고 말씀하십니다. 다시 말해서 중풍병 환자를 보시고 고쳐주신 것이 아니라, 중풍병 환자를 데려온 네 사람의 믿음을 보시고, 중풍병 환자를 고쳐주셨습니다. 그들의 믿음과 노력, 사랑, 애씀, 땀방울을 보시고 고쳐주셨습니다. 그들의 수고를 아름답게 보셨습니다. 지붕으로 올라가는 발, 구멍을 뚫는 그들의 손, 중풍병 환자를 내리는 그들의 땀방울을 보시면서 아름답다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팔레스타인 지역을 돌아다니는 발은 일반적인 심미안으로 보아서는 절대로 아름다울 수 없는 발입니다. 먼지투성이에 각종 오물이 묻어있는 발입니다. 그래서 어느 집을 방문하든지, 그 집에서 제일 먼저 하는 일은 그 집 종이 나와서, 손님의 발을 씻기는 것이었습니다. 먼지와 오물은 물론, 지붕에 올라가면서, 구멍을 뚫으면서 나뭇가지에 긁히고 찢기어 피가 얼룩지기도 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이 사람들의 손과 발이 아름답다고 말씀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아름다움의 기준, 즉 미의 기준은 바로 이 믿음이요, 네 명의 땀방울로 젖은 손과 발입니다.
예수님은 이들의 아름다운 손과 발을 미의 기준으로 보셨습니다. 그래서 저들의 믿음을 보시고, 고쳐주셨다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저는 중앙일보의 신문기사를 보고, 너무 부끄러웠던 적이 있습니다. 그 기사의 타이틀은 “신자 등친 부부 목사 실형”입니다. 그 기사의 내용은 부부 목사가 열성 신도에게 “큰 차를 하나님께 바치면 축복해 주신다”라고 말했습니다. 목사님의 말씀에 열성 신도 부부가 승합차 두 대를 교회에 헌납했습니다. 4000만원이 넘는 돈을 헌금했습니다. 그 열성신도 부부가 경제적인 어려움을 호소하자 목사 부부는 또 다른 ‘계시’를 내렸다고 하면서, “하나님이 물질을 주실 때가 왔으니 서울로 상경하라”고 하였습니다. 그 열성신도 부부는 서울로 올라와 수유동에서 족발집을 운영하기 시작했다는 것입니다. 경험도 없는 부부가 낯선 곳에서 사업을 하니잘 되겠습니까? 그동안 목사 부부에게 갖다 바치느라 꿔다 쓴 돈만도 8000여만원이나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열성신도가 부부 목사를 하나님의 말씀을 내세워 헌금․헌물을 강요한 혐의로 고발했습니다. 목사에게는 징역2년, 부인에게는 2년6월을 선고했다는 기사의 내용이었습니다. 정말 한숨만 나오는 답답한 내용입니다. 아름다운 손과 발이 되어야 할 사람들이 오히려 순수하고, 열성적인 신도의 등을 쳐먹었기 때문입니다.

오히려 이와는 다르게 이 시대의 아름다운 손과 발이 되어 주는 사람을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어머니는 소풍 중'이라는 책을 쓴 황교진 이라는 청년이었습니다. 효(孝)가 점점 사라져가는 요즘, 건축가를 꿈꾸고 한 여자를 만나 사랑을 나누던 평범한 20대 청년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어느 날 밤 그의 인생을 '비범'하게 바꿔놓은 사건이 일어나게 됩니다. 동대문시장에서 도매상을 하던 어머니가 가게에서 갑자기 뇌출혈로 쓰러진 것입니다. 어머니는 병원을 세 번이나 옮긴 끝에 가까스로 수술을 받았지만, 7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의식 없이 병상에만 누워있게 되었습니다. 친구들이 직장을 얻고 결혼을 하는 동안 어느새 30대 중반으로 접어든 저자가 한 일은 오직 어머니 간호였습니다. 어머니에게 드릴 음식의 영양과 열량을 꼼꼼히 따지는 영양사가 되어 직접 만든 죽을 코에 연결된 튜브로 넣어주기도 하고, 매일 어머니의 관절과 근육을 풀어주는 물리치료사가 되기도 합니다. 아침마다 3시간에 걸쳐 목욕을 시키고, 용변을 치우고 휠체어로 산책을 시키고, 머리카락까지 직접 자르기도 한다는 것입니다.
저자의 간호 덕분에 어머니는 의사도 놀랄 정도로 건강한 혈색을 유지하고 있고, 7년 넘게 살아있다는 자체가 기적이라고 합니다. 아들은 ‘몸짱’까지 돼버렸습니다. 어머니를 간호하려면 체력이 좋아야 한다며 운동하기 싫어하던 저자가 어머니 곁에서 틈틈이 운동을 했고, 지금은 팔굽혀펴기 200번도 거뜬히 해낸다. 체력이 없으면 간병을 할 수 없다는, 그 하나의 이유 때문이었습니다.
저자가 다니고 있는 교회 사람들이 그를 '울트라맨'이라고 부를 정도입니다.
사람들이 "어떻게 그렇게 7년동안 3시간만 자면서 휴식도 없이 어머니를 돌볼 수 있느냐"고 물으면 저자는 "사랑하니까"라고.짧게 대답합니다. "어머니가 어린 시절 나를 먹이고 입혔듯이 지금은 반대로 내가 어머니를 돌보는 것뿐" 이라고 이야기합니다.
올해 초 집이 경매에 넘어갈지도 모르는 어려운 상황을 맞으면서 저자는 힘든 결정 끝에 어머니를 한 요양원에 맡겼고, 요즘도 어머니를 돌볼 간병용 의료기기를 늘 휴대하고 다닌답니다. 10년 만에 찾아온 더위라지만, 배낭에 가득 담은 채 지하철로 왕복 3시간이 걸리는 요양원에 매일 찾아가 어머니를 간호하고 있습니다. '소풍' 간 어머니가 언젠가는 돌아올 거라고 기대하면서 아직도 손과 발에 땀을 흘리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앞으로의 계획은 어머니를 7년간 돌본 경험으로 가난하고 아프고 불편한 사람들에게 봉사하며 사역하는 삶을 살겠다고 결심한 건장한 남자였습니다.
이 청년의 내용이 tv와 책으로 나아가자, 많은 사람들이 그 청년에게 위로와 힘을 주었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아마도 이 시대의 아름다운 손과 발의 모습을 보고, 격려해 주었기 때문입니다.

3. 그런데 아름다운 손과 발을 가진 사람 주위에는 두 종류의 사람이 있습니다. 첫 번째로 무엇보다도 아름다운 손과 발을 가진 사람들을 비하하거나, 그들의 수고를 험담하여 이루어지지 않도록 하는 것입니다. 늘 험담하며 비꼬는 사람이 있습니다. 행하며 땀방울을 흘린 사람들을 비웃으며, 경시하는 사람이 있기 마련입니다. 오늘 본문 말씀에도 네 명의 사람들이 중풍병 환자를 데려와 예수께 고침을 받고 있습니다. 그 때에 율법학자 몇몇이 예수의 고침을 못마땅하게 생각합니다. 7절 말씀에 보면 “이 사람이 어찌하여 이런 말을 한단 말이냐? 하나님을 모독하는구나. 하나님 한 분 밖에, 누가 죄를 용서할 수 있는가?”라며 예수님의 행적에 비판을 가하고 있습니다.
아름다운 손과 발에 땀방울을 묻힌 노력과 수고를 하려 하지 않고, 신앙의 이름으로 단지 말장난으로 그들의 수고를 헛되게 하려는 사람이 있습니다. 율법학자가 그런 류의 사람입니다. 아름다운 손과 발이 되어 준 네 명의 사람과 그들의 수고를 보고 생명을 살려 내는 예수님과는 다르게 늘 원리와 원칙만을 강조하며, 남을 비판하는 것이 자기의 사명인양 행동하는 사람입니다.
이솝 이야기 중에 이런 이야기가 있습니다. 늙은 사자가 병이 나서 자리에 눕자 숲의 모든 동물들이 문병을 다녀갔습니다. 그런데 웬일인지 여우만은 나타나질 않았습니다. 늑대를 이때다 싶어 사자에게 여우의 잘못을 미주알 고주알 고해바치면서 여우가 사자를 동물의 왕으로 인정하지를 않아 병문안도 오지 않는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때마침 여우가 나타나 늑대가 하는 말을 들었습니다. 늑대의 말을 듣고 몹시 화가 난 사자는 여우를 보자 노여움을 터뜨렸습니다. 여우는 몇 번이고 자기의 잘못을 사죄한 후 엎드려 사자에게 말했습니다.
“사실 저는 당신의 병을 고치기 위해 이곳 저곳 용한 의사를 찾아다니느라고 늦었습니다. 마침내 병을 고칠 수 있는 방법을 알아냈답니다.”
흐뭇해진 사자는 병을 고칠 수 있는 방법을 물었습니다. 여우가 천연덕스럽게 대답했습니다. “늑대의 생가죽을 벗겨서 식기 전에 아픈 곳에 부치면 됩니다” 늑대가 당장에 붙잡혀 가죽이 벗겨진 채 죽게 된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남을 험담한 결과는 시간이 걸릴 뿐 결국 자신에게로 돌아올 것입니다. 아름다운 손과 발을 험담하며 비판이라는 화살은 결국 자기 자신을 향해서 돌아온다는 것입니다.

두 번째로 아름다운 손과 발을 가진 사람 주위에는 또 다른 종류의 사람이 있습니다. 이 사람들은 무엇보다도 고통받는 사람, 아픈 사람에 관심이 없습니다. 아름다운 손과 발을 가진 사람들을 비하하거나, 그들의 수고를 험담하지 않습니다. 이러한 사람들을 익명의 사람이라고 합니다. 오늘 본문 말씀에도 예수님 주위에 많은 군중이 있었습니다. 네 명의 사람들이 중풍병 환자를 데려 왔을 때, 그 군중들은 자리를 비켜주지 않았습니다. 어느 누구도 양보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네 명의 사람들은 지붕을 뚫고 예수님께 간 것입니다.
문학가인 루이스(C.S.Lewis)의 작품 가운데 마귀가 조카인 웜우드를 훈련시키는 내용이 나옵니다. “나쁜 인간을 만들려고 애쓸 것 없다. 내게 필요한 인간은 오직 남에게 관심이 없는 인간이다. 그런 인간이면 족하다. 인간으로 하여금 ‘나는 빼달라!’하고 주장하게만 만들어라! 그러면 우리일은 성공한 거야”라는 이야기가 나옵니다. 오늘의 시대를 익명(匿名)성의 시대라고 합니다. 사람들은 자기의 이름을 드러내는 것을 싫어합니다. 군중 속으로 숨으려고 합니다. 왜 그렇습니까? 그렇게 되면 자기에게 걸맞게 돌아가야 할 책임과 의무가 면제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아름다운 손과 발이 되려고 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4. 오늘 본문 말씀을 통해서 예수님이 제시하는 아름다움, 즉 미의 기준을 보았습니다. 세상이 보여주며, 추구하는 외모지상주의의 미가 아닙니다. 네 명의 사람들이 중풍병 환자를 데리고, 지붕으로 올라가, 구멍을 뚫어 예수님께 내리는 손과 발의 아름다운 땀방울이 우리의 미의 기준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이제는 우리의 손과 발에도 아름다운 땀방울이 넘쳐나야 할 것입니다. ‘아름다움’ 그것은 바로 하나님의 사랑과 복음을 전하는 것입니다. 진정 아름다운 손과 발을 지니시는 여러분이 되시길 바랍니다.

제목: 아름다운 손과 발
말씀: 마가복음 2:1-12
양성진 전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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