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설교

주일설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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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하나님께서 세 사람에게 한 가지의 소원을 들어주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먼저 첫 번째 사람에게 물었습니다. "무엇하여주기를 원하느냐?“ 그 질문에 한 사람은 ‘저는 하늘의 별, 스타가 되고 싶습니다’고 하였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그 사람은 하늘의 별, 스타를 만들어주셨습니다. 그리고 두 번째 사람에게 물었습니다. ‘무엇하여 주기를 원하느냐’ 그 질문에 두 번째 사람은 ‘저는 이 세상을 다스리는 왕이 되고 싶습니다. 저를 왕, 킹으로 만들어 주십시오’라고 대답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두 번째 사람을 왕, 킹으로 만들어주셨습니다.
마지막으로 세 번째 사람에게 ‘무엇하여 주기를 원하느냐’라고 물었습니다. 세 번째 사람은 하늘의 별, 스타도 되고 싶고, 이 땅을 다스리는 왕, 킹이 되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세 번째 사람은 욕심을 내어서 ‘둘 다 되고 싶습니다’ 라고 이야기 했습니다. 그랬더니 하나님께서 무엇을 만들어주셨겠습니까?
네, 바로 ‘스타킹’을 만들어주셨다는 것입니다.
사람들에게 이렇게 소원과 소망에 대한 예화가 많이 있습니다. 이것은 사람들이 현재에 바라는 소원과 소망이 많다는 의미입니다.
성경에도 소망과 소원을 바라는 사람들이 많이 있었습니다. 여리고의 눈먼 사람 바디매오에게 예수는 “내가 너에게 무엇을 하여 주기를 바라느냐” 고 물었습니다.(막 10:51) 그가 “선생님, 내가 다시 볼 수 있게 하여 주십시오”하고 대답하자, 예수는 “가거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고 하였습니다. 그가 간절한 바람을 갖는 것을 예수님은 믿음이라고 칭찬한 것입니다.
열두 해 동안 혈루증 앓던 여인이 예수의 뒤로 와서 그의 손을 대고 병이 낫게 되었을 때도, 예수는 “딸아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하고 격려해 주었습니다. (막5:34) 그 여자는 ‘내가 그의 옷에 손을 대기만 하여도 나을 터인데!’ 하고 간절한 소망을 말했는데, 바로 이것을 예수님은 믿음이라고 칭찬한 것입니다.
예수님은 병들고 장애가 있고 어려움이 있는 사람들이 병이 나을 수 있고, 장애가 극복될 수 있고, 문제가 해결될 수 있다는 소망을 버리지 않기를 원했습니다.
예수가 병을 고쳐주고 기적을 일으킨 일들은 대개 이런 사람들의 사정을 헤아리고 그들의 간절한 소원과 소망을 들어주는 가운데 일어난 것들이었습니다. 예수님은 그들에게 어떤 경우에도 ‘절대로 안된다’거나 ‘너는 안된다’는 식의 절망적인 말이나 거절하는 말을 하지 않았습니다.

초등학생들이 선생님의 어떤 말에 가장 상처를 받을까? 초등학생 4~6학년을 대상으로 설문조사한 결과를 보았습니다. 그랬더니 가장 상처받는 말로는 ‘너희 부모님이 그렇게 가르쳤니?’가 가장 많은 표를 받았습니다. 초등학생들이 자신 때문에 부모님을 욕되게 하는 것을 가장 상처 받는 말로써 생각했습니다. 다음으로는 ‘너 같은 애는 가르칠 필요 없다’고 자포자기하는 말을 할 때였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쉬운 문제도 못풀어’하며 구박할 때, ‘니가 제일 못해’ 라며 다른 사람들과 비교할 때 가장 상처를 많이 받는 다고 했습니다.
아이들은 칭찬을 먹고 자랍니다. 이런 질책과 부정적인 말보다는 ‘네가 제일이야’, ‘참 잘 이해하는구나’ 하는 칭찬을 먼저 던지는 것이 가장 좋다고 합니다.
이 글을 접하면서 제 어린 시절을 생각했습니다. 학교에서 한번, 교회에서 한번 상처를 받았던 기억이 납니다. 학교에서는 제가 멋지게 저만의 그림을 그렸습니다. 그리고 흐뭇해 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선생님이 나타나시더니, 저에게 물었습니다. “이 그림은 도대체 무슨 생각을 가지고 그린 거니”, 이 말을 듣고 전 충격을 받았습니다. 그 이후로 전 그림을 절대로 그려 본적이 없습니다. 지금도 그림을 그리지 않습니다. 그래서 저의 그림 실력은 그 때의 초등학교 2학년 때의 실력입니다.
이렇게 한 마디의 말이 사람에게는 해가 될 것이며, 약이 될 것입니다.
얼마 전에 베스트 셀러였던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에서 인간과 범고래와의 관계는 인간 사이의 관계와 다르지 않아서, 멋진 쇼를 하게 만드는 비결은 상대방에 대한 긍정적인 관심과 칭찬, 그리고 격려라고 말해주고 있습니다. 그러나 실제로 가정과 직장의 일상생활에서 다른 사람에 대해 긍정적 관심을 가지고 지속적으로 칭찬과 격려를 하는 사람은 드물다. 오히려 우리 삶은 타인에 대한 무관심과 부정적 반응으로 둘러싸여 있다. 잘 생각해 보면 우리 모두는 가정과 직장에서 다른 사람들이 일을 잘하고 있을 때는 무관심하다가 잘못된 일이 생겼을 때만 흥분하고 질책하게 됩니다. 이 책에서는 그러한 부정적 반응을 '뒤통수치기 반응'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사람들이 실수를 저지를 때 뒤통수를 치듯 반응한다는 의미입니다.
그래서 '고래 반응(Whale Done response)'이라 불리는 범고래 훈련법은 성공적인 인간관계를 위한 훈련법과 다르지 않다는 것입니다. 이 고래 반응이라는 것은 먼저, 범고래가 쇼를 멋지게 해냈을 때는 즉각적으로 칭찬하고, 실수를 했을 때는 질책하는 대신에 관심을 다른 방향으로 유도하며, 중간중간에 계속해서 격려하는 것이 핵심입니다.

제가 어린 시절에는 대개 갖고 싶은 것은 많았어도 그것을 손에 넣는 일은 쉽지 않았습니다. 내가 꼭 갖고 싶었던 것들 가운데 지금도 기억나는 것이 몇 개 있습니다.
미술 시간에 흔히들 12색짜리 신신파스나 24색짜리 지구파스 같은 것을 썼는데 가끔 부잣집 아이들은 그런 크레파스의 세 배인 36색이나, 네 배정도가 되는 48이 되는 큰 2단짜리 왕자파스를 갖고 다녔습니다. 전 그게 있으면 그림을 더 잘 그릴 수도 있었을 텐데 하고 아쉬워한 적이 많았습니다.
그리고 도시락도 부잣집 아이들은 2층으로 된 도시락통을 가지고 다녔습니다. 절대로 새지 않는 도시락통입니다. 전 철로 만들어진 깡통 도시락이었습니다. 이 도시락통은 왜 그렇게 김치국물이 매일같이 흘러나오는지 온 책들을 김치국물로 적시고는 했습니다. 그럴 때마다 부잣집 아이들의 2층으로 된 도시락통을 부러워하곤 했습니다.
그리고 다른 아이들은 신발도 유명메이커인 ‘나이키’를 신고 다니면 전 ‘나이스, 너이키’인 짝퉁을 신고 다녔고, ‘폴로’가 아닌 ‘팔로’, ‘프로 스펙스’가 아닌 ‘프로 펙스’을 입고 다녔습니다.
전 이런 것들을 갖고 싶은 대로 갖지는 못했지만 그래도 늘 감사하는 것이 있었습니다. 제 생각으로는 도저히 우리 경제 형편으로는 살 수 없을 것 같은 것을 갖고 싶어서, 부모님께 말씀드리면 부모님은 “어떻게 그런 것을 살 수 있느냐”고 펄쩍 뛰지 않으셨습니다. 그냥 내가 갖고 싶어하는 그 마음에 동의해 주고 어떻게 하면 살 수 있을까 고민도 하고 함께 길을 찾아보고자 하셨습니다.
그러면서 뭔가 희망을 잘라 버리지는 않으셨습니다. 전 이후에 불가능해 보이는 것도 희망을 버리지 않고 가능성을 찾다보면 희미한 가능성이어 보이면서 확실한 현실성으로 다가온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뭐든지 안된다고 거절해버리거나 겁먹기 보다는, 먼저 소망을 품고 꿈을 꾸어보고 어떻게든 그것을 이루어보려고 노력해나가는 재미랄까 기쁨을 터득하게 된 것입니다. 부모님께서 내게 무엇을 사주신 것보다도 그런 기쁨을 터득하게 해 주신 것이 지금도 참으로 고맙습니다.

2. 예수님과의 관계에 있어서도 늘 부모님께 조르듯이 예수께 기도하는 사람이 되었고, 기도하는 동안 전 늘 예수님 안에서 소망을 갖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때로는 기도한 것이 이루어지기도 하고 때로는 그렇지 않은 경우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 소망이 없어진 적은 한번도 없습니다. 제가 기도한 것이 이루어지든 이루어지지 않든 전 늘 예수 안에서 소망 가운데 산다는 것만으로 너무나 고맙고 행복합니다. 예수님은 바디매오에게 “내가 너에게 무엇을 하여 주기를 원하느냐?”하고 물은 것처럼 지금 우리에게도 똑같이 물을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에게 소망이 있는 한 우리는 살아 있는 것이고 행복한 것입니다.
최근에 한국교육개발원이 발표한 ‘저소득층의 교육복지 실태’ 보고서에 따르면, 대도시 빈민 지역 초등학생과 중학생 가운데 30%가 자신의 미래가 희망적이지 않고, 가정형편이 어려운 학생일수록 ‘노력하면 목표나 희망을 이룰 수 있다’는 대해 부정적인 답을 했다고 합니다. 우리 주변에는 어느새 ‘가난한 집 아이들이 공부를 잘한다’는 말이 자취를 감추었습니다. 지난해 서울대 신입생들의 아버지 직업 분포를 보면, 기업체 간부, 고급 공무원 등 관리직이 28%, 의사, 교수, 등 전문직이 24.8%였다고 합니다. 전체의 절반이 넘는 수입니다.
아이들은 알고 있습니다. 이제는 좋은 학원이나, 배경이 아니면 쉽게 성공할 수 없다는 것을 알게되어서 절대적으로 믿고 있습니다. 그런 아이들은 상대적 박탈감이나 절망감에 빠지게 됩니다. 그런데 문제는 청소년들이 자신들이 노력해봐야 별 수 없다는 절망감에 사로 잡혀 어떠한 시도도 하지 않는 현상입니다. 이런 절망감이야말로 가난이나 굶주림보다도 더 사람을 파괴시키고 비참하게 만드는 것입니다.
교회가 예수님의 일을 따라 하고, 예수님의 삶을 살아가고자 하는 곳이라면 오늘날 이런 박탈감을 가진 사람들에게 진정한 소망을 주는 곳이어야 할 것입니다. 많은 교회들이 예수를 믿기만 하면, 무슨 무슨 기도를 얼마 동안 하기만 하면 집이 생긴다, 무엇이 생긴다 하면서, 소망의 근거를 이 세상에 두고 있습니다. 누구는 예수를 믿었더니 대기업에 취직이 되었다, 누구는 그렇게 헌금을 했더니 몇배나 부자가 되더라, 미국을 비롯한 서양의 기독교 국가들은 예수를 믿어서 저렇게 부자가 되었다. 그러니 예수 믿으면 우리도 부자되고 출세하고 강대국이 된다는 소망을 제시하기도 합니다.
그것은 분명 예수를 빙자한 이 세상의 소망이지, 예수가 주는 소망이 아닙니다.
바울은 그리스도인의 소망을 이런 세상적인 성취 안에 세우지 않고 예수 그리스도 위에 세웠습니다. 예수님은 갈릴리의 작은 사람들의 소망을 들어주기 위해 자신을 내주었으며, 그러는 가운데 십자가를 지기까지 하였습니다. 그러나 십자가와 부활 사건 이후로, 그들의 소원을 들어주던 예수님은 이제 그리스도인의 희망의 근거가 되고 희망 그 자체가 되었습니다.

바울은 그리스도인의 새로운 생활에 대해 말하면서 “소망 가운데 즐거워하라”고 합니다(롬12:12) 흔히 세상 사람들은 즐거움이나 기쁨은 무엇인가를 성취했을 때 온다고 생각합니다. 원하는 것을 손에 넣거나 어떤 목표에 도달했을 때 환호성을 지르고 축배를 듭니다. 그런데 바울은 그런 성취가 이루어지기 전에, 아직 목표한 것이 소망 가운데 있을 때 기뻐하라고 하는 것입니다. 이는 마치 아직 대학에 가지도 않았는데, 대학에 갈 소망을 갖고 공부하는 고3학생, 재수생에게 즐거워하라고 말하는 것과 같습니다. 아직 결혼하지 않은 처녀 총각에게 그 미혼 시절에 결혼할 소망 가운데 기뻐하라고 말하는 것과 같습니다.
아직 이루어지지 않은 것이 있어도, 실패가 있어도, 문제가 있어도, 그것보다 더 나은 미래를 소망하는 가운데 즐거워해야 합니다.
바울은 우리가 바로 “이 소망으로 구원을 얻었다”고 합니다. 우리가 구원을 받았다고 하는 의미를 바로 이러한 소망 가운데 산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래서 바울은, “눈에 보이는 소망을 소망이 아닙니다. 보이는 것을 누가 바라겠습니까?” 합니다.(롬8:24)
이미 성취된 것은 소망이 될 수 없다는 것입니다. 모든 것을 성취한 사람은 소망이 없는 사람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은 배가 부른 사람이 아닙니다. 그는 보이지 않는 것을 바라는 사람입니다. 그 소망 가운데 기다리는 사람입니다.

3. 이제 전 더 이상 왕자파스를 갖고 싶어하지 않습니다. 유명메이커를 원하지도 않습니다. 하지만 왕자파스와 유명메이커에 대한 기억은 내게도 뭔가를 간절히 갖고 싶어 하는 소박한 소망이 있었음을 느끼게 해 줍니다. 바디매오가 눈을 뜨기를 바란 것이나 혈루증 앓던 여인이 병이 낫기를 바란 것은 그들의 인생 전체가 달린 간절한 것이었습니다. 그들의 그런 소망에 비하면 나의 어린 시절의 소망이라는 것은 철없는 것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그건 지금 저의 생각입니다. 그 때 그 소년에게는 그 어떤 것보다 그것이 간절한 소망이었는지도 모릅니다. 예수님은 그런 간절함을 알았습니다. 그 누구도 바디매오나 혈루증 앓는 여인의 소망에 관심하지 않을 때, 예수님은 그들의 간절한 소망을 함께 느낄 수 있었습니다. 작은 사람들의 소박한 소망에 대해 예수님은 도덕적인 잣대를 가지고 평가하거나 ‘뭐 그런 걸 다 가지려고 해’ 하지 않았습니다. 대신 뭔가를 간절히 소망하는 것을 믿음이라고 칭찬해 주었고, 그 소망을 들어주었습니다. 오늘 우리는 이 예수님을 따라서 작은 사람들이 소망을 품을 수 있도록 해주어야 합니다. 내가 소망을 품는 것도 중요하지만, 누군가가 소망을 품고 살 수 있도록 예수님의 일을 하는 것도 중요할 것입니다. 그것은 또 다른 그 누군가가 자기만의 ‘왕자파스’를 갖고 싶다고 말할 때, 그의 말에 귀를 기울여주는 것이고, 그에게 동의하는 것이고, 그가 그 소망을 이룰 수 있도록 함께 노력해 주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땅의 작은 사람들이 자신들의 미래에 대해서 훨씬 더 긍정적이 되고, 무엇이든 노력하면 이룰 수 있다는 믿음을 가질 수 있게 해 주는 것입니다. 이것이 예수의 소망입니다. 그리고 이젠, 이 예수가 우리의 소망입니다.

제목: 우리의 소망
말씀: 로마서 8장 24절 - 25절
로마서 12장 12절
양성진 전도사